통산타율.342.

Rogers Hornsby,  Ed Delahanty이어 역대 우타자 통산타율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Harry Heilmann은 회계관련 서기일을 하다 친구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하게 된다. 친구가 있던 아마추어팀 주전 3루수의 부상을 메우기 위해 백업요원으로 갔던 것이 본격적인 야구 커리어의 출발점이 되었고, 1920년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타격달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13년 세미프로팀에서 타율.305을 기록하면서 디트로이트가 타이거스에 정식입단, 1914년부터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데뷔 첫해에 2할대초반의 타율로 부진하여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그는 마이너팀에서 3할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1916년 다시 메이저로 올라오긴 했지만, 그다지 좋은 성적을 보여주진 못하였다. 그리고, 당시 디트로이트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방망이가 식지 않고 잇던 '3루타 제조기' Sam Crawford가  Heilmann의 포지션인 우익수를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고, 중견수는 Ty Cobb, 좌익수 역시 만만치 않은 타격실력을 갖고 있던 Bobby Beach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게다가 1918년에는 대부분의 시즌을 군복무로 인하여 결장하게 된다.

사진출처 : 명예의 전당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1루수로 자리를 옮겼지만, 특출나는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한데다가 수비에서는 2년 연속 리그 최다에러를 범할만큼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1914년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후 애초의 기대와 달리 6년간 그의 타율은 3할에 미치지도 못했고,  팀과 팬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는 그러한 선수로 인식되어 가고 있었다.

그의 성적은 1921년 Ty Cobb이 팀의 지휘봉을 맡자 엄청난 반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Cobb은  자신의 타격노하우를 Heilmann에게 빠짐없이 가르쳤고,  원래 수비포지션인 외야로 복귀시켰다.  전년도 3할 초반대 머물렀던 타율이  0.394까지 상승하여 첫번째 리그타격왕,  리그 최다안타(237개), 114득점, 139타점으로 공격전부문에서 리그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1922년에는 쇄골부상으로 시즌초 결장을 하긴했지만, 3할중반대의 타율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생애최다인 21개의 홈런을, 그리고, 최다에러를 범할만큼 실망스러웠던 수비도 반전을 이뤄내면 최고의 외야수중 한명으로 변모하였다. 1923년에는 커리어 첫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꿈의 타율인 4할(.403)을 기록하며 Cobb을 제치고 생애 두번째 리그 타격왕에,  그리고 211안타와 121득점, 115타점으로 팀공격을 이끌게 된다.

1925년 클리블랜드의 Tris Speaker와 시즌 막바지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친끝에 시즌 마지막경기에서 3타수 3안타를 몰아친 Heilmann은 타율.393으로 끝내며 자신의 세번째 타격왕에 등극하였다. 이듬해 타율.367로 리그 3위에 그친 그는 1927년 커리어 4번째 +200안타달성과 4할에 0.02가 모자른 .398로 네번째 타격왕에 오르며 Ty Cobb이후 가장 정교한 타자로 명성을 쌓아나갔다.

이후에도 3할중반대의 타율과 계속된 +100타점의 장타력으로 Cobb에서 Charlie Gehringer로 이어지는 디트로이트 공격력의 세대 교체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손부상과 30대 중반의 나이었던 1929년 시즌에도 3할 중반대의 타율,  +100타점의 활약을 이어갔지만 디트로이트는 Heilmann을 포기하는 실수를 범했고, 근는 이듬해인 1930년 신시내티 유니폼을 입고 선수생활을 이어나간뒤 1932년 은퇴하게 된다. 1920년대  평균타율.364,  +200안타, +100득점, +100타점 등은 하위권의 팀성적을 감안하면 더욱더 빛이 나는 성적이였다. 메이저리그 전 구장에서 홈런을 친 최초의 타자이기도 했으며 은퇴후에는 디트로이트의 야구해설자로 마이크를 잡았고 1952년 86.75%의 득표율로 헌액되었다.